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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Fragments

해킹되어 사라진 내가 적은 글 복원.. 엄청 긴 경험담 by 임은천

by 임은천 2015. 7. 11.

엄청 긴 경험담 by 임은천


[출처] http://www.okjsp.net/seq/237582


인생에서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가지고 계신 경험이 없기 때문에 미
래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해 부모님과 마찰도 있고, 답답함을 느끼고
계실 것 같네요.

가끔 하는 이야기라 어떤 분들은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길도 있다
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밍은 만 8살 때 처음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프로그래밍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내용이었죠. 사실 그 때는 인터넷도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
았고, 모니터도 단색 컬러(초록색)만 표시할 수 있는 상태였죠. 저는 여러 학
원을 다녔지만.. 컴퓨터 학원 만큼 재미 있지는 않더군요.

초등학교 다니면서 게임기들이 나오고, 그 뒤에 PC가 게임기를 대체하게 되면
서 대중화가 되었죠.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386 컴퓨터를 샀고,
당시에는 DOS가 많이 이용되어서 DOS 명령어들 공부하면서, 배치 프로그램 같
은 것을 짜보고 했습니다. 그 뒤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 해마다 직접 컴퓨터를 조립해가면서 하드웨어가 변화해 가는 것을 몸소
체험했었죠. 지금 생각 해보면 집안 사정 생각도 안하고, 부모님께서 뼈빠지
게 일해서 버신 돈을 해마다 거의 100만원에 가까운 돈을 공부한다는 명목하
에 쓴 것이네요.

중학교 때는 게임 하면서 에디팅을하기 위해서 hex, 이진수 등에 익숙해졌고,
나쁜 짓인줄 모르고.. 게임 크래킹 하기 위해서 어셈블리어를 공부하고 크래
킹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달달이 PC 잡지 등을
사서 꾸준히 읽었구요.

고등학교 때는 영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할 것 같아서 다른 애들은
전 과목 공부했지만.. 저는 영어 독해만 3년 내내 한 기억이 있네요. 결국 이
런 독해를 했던 경험들이 그 후로 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큰 도움이 되었습
니다.

당연히 부모님도 이런 제 관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말리지 않으셨고, 집안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4년 전액 장학
생으로 순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남들은 다 학과에서 짜준 수강 과목을 그대로 따라서 수업을
들었지만.. 저는 제가 스스로 수강 과목을 결정하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주로
컴퓨터 공학 쪽 수업과 영어 교양 위주로 편성했습니다. 다만, 좀 특이한 점
이라면.. 3, 4학년 선배들이 듣는 전공 과목을 1학년 때부터 들었고, 이는 제
단순한 생각(1학년 때 미리 3, 4 학년 과목을 들어보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될것이다.) 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들은 것입니다.

그 중에 인터넷 공학이라는 과목이 있었고, HTML으로 홈페이지 만드는 프로젝
트를 수행하는 수업이었죠. 뭐 지금은 간단하게 여겨지는 HTML이지만.. 그 때
는 인터넷이 보급되는 중이라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죠.. 게다가 PHP 같은 언
어도 이제 막 태동 하던 중이던 때 였습니다.

다른 선배들은 HTML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었지만.. 전 특이하게도 인터넷에
공개된 게시판 소스를 분석하고 이해해서 PHP로 게시판을 작성했고..(좀 튀긴
했지만..)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았죠.. 제 개인적으로는 이 분야에 큰 자신
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수업 들을 때, 선배님이나 조교 선생님께서 만류하기
도 했었지만.. 밀어붙여서 수업을 들어서 저만의 방식으로 좋은 점수를 얻었
으니까요.

1학년 때 군입대 신청을 해놔서 1학년만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 세상 일에
대해서 모두 잊고, 군대 일에 매진하다 보니 2년이 금방 가더군요. 상병 이후
로 휴가를 오지 않고, 모아 두어서 병장 휴가를 거의 한달 정도 나온 것 같습
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대학 강의에 결석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
습니다. 물론 15 박 후에 하루는 부대에 들러야 하긴 했었지만.. 그 덕에 아
무런 시간 손실 없이 제대하는 날 복학할 수 있었고, 수강도 빠짐 없이 참가
할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제대 후에 뭘할까? 생각해 보니 당
연히 프로그래머가 되어야지 라는 단순한 결론이 나오더군요.

2학년 때 들었던 직업과 진로라는 과목에 당시 SK 석유 사장님께서 와서 해주
신 이야기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어차피 인생 한 번 사는 것이고.. 남들
누릴 것 다 누리고 성공할 수 없다. 그 연사님께서 대학교 다닐 때 3~4시간
밖에 안자고 공부했다고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군 제대 후라 체력도 좋았
고, 그렇게 하고자 했지만.. 제 공부는 학과 전공 공부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
습니다.

2학년 2학기 때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일이 한 가지 생기죠. 어셈블리어
수업 중에 프로그래밍 동아리 선배 눈에 띄게 되어 프로그래밍 동아리에 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그 전까지 컴퓨터 쪽 공부를 했던 것은
주먹구구식이었던터라..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졌죠. 이와 더불어 봉사 장학
생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면서 다달이 대략 20만원 정도 생활비를 받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밥 먹는 돈 빼고는 모든 돈을 컴퓨터 공학 전공
서적 사는데 썼고.. 거의 3~4시간 자면서 프로그래밍에 매진했습니다. 이 상
태에서 프로그래밍은 공부가 아니라.. 그냥 제 삶 자체 였던 것 같습니다. 명
절 때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제가 공부했던 것을
거의 날마다 일기로 남겼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처음은 소설 같은 자바라는 책이었던 것 같네요. 그 뒤로 분야를 확 늘리긴
했습니다.. 그래서 2학년 3학년 동안 Java, JSP, C, C++, C#, Javascript,
Flash, Oracle PL-SQL, MySQL T-SQL, XML 등등을 한꺼번에 공부했었죠. 그러
면서 okjsp에도 들르기 시작했던 것 같구요. 우물안 개구리였던 제가 조금 거
만해져서 웃기는 소리도 몇 자 적기도 했던 부끄러운 경험도 있고.. 싸운 적
도 있었던 것 같네요. ㅎㅎ;;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하드
웨어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생기게 되었죠.

3학년 말 쯤에 정든 동아리 방을 떠나 대학교 연구실 제 은사님 방으로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생활비는 비슷하게 지원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대략 20만원
정도였죠.. 제 생활은 크게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먹는 돈 빼고 모든 돈은
전공 서적 사는데 썼고, 3~4시간 자면서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물론 연구실에
서 라꾸라꾸 침대에서 잤고.. 지도 교수님께서 신경 써주셔서 겨울에도 화장
실에서 온수가 나와서 샤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정신 차리려고
겨울에도 냉수로도 샤워를 하긴 했습니다.

4학년 1학기 때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업이 내게 옳은 길인가? 아니
면 연구자의 길로 갈 것인가?

저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구요. 제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동
대학원에 동 지도교수님 밑에서 석사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석사 생활 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이 전공 서적을 쓰는 것이라 발로 직접 뛰어가면서 책을 출판
해봤습니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필리핀으로 6개월 정도 어학 연수를 갔습니다.
학생 메니저라는 것을 하기 시작해서 2개월 정도는 무료로 있었던 것 같습니
다. 그래서 총 8개월 정도 있었구요. 사실 어학 연수를 간 것이 TOEFL과 GRE
라는 것 때문이었고, 한 번 시험 봐서 좋은 점수를 얻었고, 미국 대학에 지원
해서 대략 10군데 정도 합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합격하고 보니 제가 하고 싶은 것이랑 조금 거리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소프트웨어에 자신감이 있었던 터라 하드웨어 쪽을 해보고 싶었
는데.. 미국 가서 누가 기초부터 잘 가르쳐 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래서 입학까지 거의 1년이 남았던 지라 이곳 저곳 수소문 한 끝에 대구에 있
는 직업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생활비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대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략 6개월 정도 전기 전자
기초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회로도 만들고 납땜도 해보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심이 섰죠. 미국에 안가고 서울 시립대의 전
기 전자 컴퓨터 공학과로 가기로.. 거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날로그 RF
회로(통신 회로) 였습니다. 몇몇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통신 회로 중
일부에 대한 경험도 얻고, 비록 실험 조교였긴 하지만.. TA도 해보면서 학생
들도 가르쳐 보고.. 마지막 석사 학기에는 아날로그 회로+디지털 FPGA 회로
설계를 위해서 창원에 가서 몇 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위성
에 들어가는 통신 부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때도 제 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냥 단순히
프로그래밍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피곤했던 기억입니다만.. 정말 재미있었
습니다. 회로 설계 및 납땜 하고 벡터 분석기에서 위상이나 진폭이 정상적으
로 나오는지.. 파형은 잘 그려지는 지, FPGA 기판은 뭘쓸 것인지 등등.. 이것
저것 테스트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날도 많이 셌었네요. 그래도 창원에서 좋
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맛난 것도 많이 먹어서 ㅎㅎ;;

그리고 석사 마지막 학기 동안에 미국 대학교에 지원을 했는데.. 이번에는 1
군데 밖에 합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상심을 하고.. 여기 까지 인가? 라
는 생각으로 방황도 꽤 했습니다.
그리고 박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 취업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미
국 뉴욕에 있는 회사 한 군데와 국내에 있는 연구 센터에 취업을 하려고 생각
했지만.. 참고적으로 미국 회사는 초봉이었음에도 연봉이 꽤나 높았던 것 같
습니다. 미국에서 전화로 면접을 해서 전화 받고 깜짝 놀랐지만..(자다가 갑
자기 영어를 들었을 때 당시 제 반응) 질문은 그 당시 제 입장에서는 간단한
것이었기에.. 디자인 패턴을 물어보더군요. 잘 대답해 드리고 최종 면접을 보
자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합격해도 하나도 안 기쁘더군요. 내가 정말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
금까지 고생한 것인가? 과학자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은? 이것이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다시 학계 쪽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미국 대학이 아니라 독일 연구소 쪽으로 지원을 했고.. 그 중 한 군데인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스카이프 면접 기회를 얻었습니다. 2회에 걸쳐서 면접을
봤고 선생님께서 언제 쯤 시작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을 해주셔서 저는 당장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에 2번째 석사의 졸업식이 남은 상황이었지만.. 교수님께 공식 합격
letter를 받고 나서 바로 비행기 표 끊어서 2일 뒤에 독일로 왔습니다. 교수
님이나 비서 분께서 놀라시더군요. 갑자기 그리고 그렇게 빨리 나타나서;;

서울 시립대 대학원 졸업식에는 참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짧은 일정(항공 시
간 빼고는 2일)으로 왔다 갔다 했었죠.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국제 박
사 과정생으로 생명 정보학이라는 학문을 하고 있고.. 그 중에서 알고리즘 및
자료 구조 개발 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뭘할 거냐? 라고 물으신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면서 생물학
을 이해하는 생물학자(과학자)가 될 때까지 정진하겠다. 라는 것이구요..

이것을 이루는 것이 제 어릴 적 부터의 꿈을 이루는 것이니까요.

질문하신 분께서 언급하셨듯이 인생 = 직업이라는 것이 맞긴 하지만.. 제 가
치관에서 인생 = 꿈을 이뤄가는 것 이라는 접근법이 더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
니다.

이것이 제가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된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제가 바라보는
IT 전반에 대한 시야이구요. 이 글에서 보이듯이 main goal은 과학자가 되자
라는 꿈이며.. IT 기술은 이것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factor
였던 것이죠.

정리하자면.. 영어가 꽤 중요하며, 전공 지식이 깊으시다면, 외국에 나와서도
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 입장에서 공무원과 현재 저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제 만족도는 분명 공무
원이 되는 것보다 수백배 높다는 것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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